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퍽이나 좋은 날이었다. 길게 늘어진 여름의 끝자락을 가을의 첫 걸음이 밟은듯한 그 경계의 계절은 햇살이 조금 강했지만 부는 바람이 기분좋게 서늘해서 덥다는 느낌은 없었다. 꼭 이런 날이었던가. 그 핏덩이가 그와 만났던 날이. 짧은 머리채가 갑자기 불어진 바람에 흔들리며 사이하게 빛나는 암녹색 눈을 드러냈다. 그것을 보는 담자색이 일그러졌다. 천자락처럼 나부끼는 순백색 머리채가 그림자를 그렸다.
태어나 한 번도 온정에 기댄 일이 없었다. 바란 적도 없었고, 주는 이도 없었다. 노림받고 쫓기며 끝없이 원망하고 증오하는 생을 살았다. 그 생 끝에 검게 망울진 감정이 혼을 이끌어 시간을 받았다. 강렬한 감정이 그리는 이들을 닮은 몸으로 눈을 뜨고도 단 한번도 다정한 세계따위 본 적이 없었다. 상냥한 이들따위 없었다.
차가운 눈이었다. 그를 처음 만났던 날도, 그로부터 이어져온 오랜 시간동안 내내. 그 암록은 언제나, 누구에게 향할적이라도 그 무엇하나 담지 않고 시리도록 차가운 위압을 한 가득 고여낸 채 있었다. 허나 그것이 무어 어떨까. 아무 상관 없다못해 오히려 언급하는 것이 쓸데없고 바보같은 일인 것을. 이 하늘 아래, 어쩌면 다를 하늘 아래서 세는 그가 살아본 세계에서, 이 숨의 시작과 끝과 다시 일어난 이후로도 유일하게 오로지 그만이 저를 구했음인데. 겨울호수같이 시린 눈이나마 나만을 비추었고, 시체보다도 더 차가운 손이나마 나에게 뻗어주었다. 처음으로 '나'로써 선택할 기회를 주었고, 그 손을 잡는다는 나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으며, 그 선택을 후회치 않도록 해주었다.
스승. 불렀다. 이름없는 스승. 이름을 내려준 스승.
살껍질을 다 뜯겨서 붉은 덩어리같던 저에게 손을 내민 당신은 무슨 생각이었는가요. 당신은 왜 나를 거두었는가요. 말은 고여든 감정을 녹이고 결국 차오른 그것이 너무 커서 언어로써 모양을 다지지 못한채 흘러내렸다. 그 앞에 엎드려 옷자락을 부여쥐고 흐느낌으로 그 물음을 패대기치듯 토해야만 했다. 그러지 않고는 감히 내보일수조차 없었기 때문에.
나의 유일이다. 당신만이. 내 삶에서 나에게 오직 당신만이 나의 전부다. 그리여긴다. 그리 느낀다. 그리 바란다. 그러기를 원하며 그리 할 것이다. 당신이 나를 살아가게 함으로 단언했고, 나에게 이름을 내릴 적에 확신했고, 나를 거둘 적에 그러길 정했으며, 우리가 처음 보던 때에 이미 그것을 바랐으니.
그 날도 꼭 오늘만 같았지. 백월의 언제나 같은 것 같은 나날들 중에서도 꼭 오늘만 같았다. 느직한 여름이 다 못 치운 자락을 가을이 성급하게 밟아 버린 바보같이 좋은 날.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던 날. 나의 유일. 당신이 나의 유일을 많이도 만들어준 날. 그날과 꼭 같은 오늘도 나에게 유일이 붙은 단어들이 늘어간다.
태어나 한 번도 온정에 기댄 일이 없었다. 바란 적도 없었고, 주는 이도 없었다. 노림받고 쫓기며 끝없이 원망하고 증오하는 생을 살았다. 그 생 끝에 검게 망울진 감정이 혼을 이끌어 시간을 받았다. 강렬한 감정이 그리는 이들을 닮은 몸으로 눈을 뜨고도 단 한번도 다정한 세계따위 본 적이 없었다. 상냥한 이들따위 없었다.
차가운 눈이었다. 그를 처음 만났던 날도, 그로부터 이어져온 오랜 시간동안 내내. 그 암록은 언제나, 누구에게 향할적이라도 그 무엇하나 담지 않고 시리도록 차가운 위압을 한 가득 고여낸 채 있었다. 허나 그것이 무어 어떨까. 아무 상관 없다못해 오히려 언급하는 것이 쓸데없고 바보같은 일인 것을. 이 하늘 아래, 어쩌면 다를 하늘 아래서 세는 그가 살아본 세계에서, 이 숨의 시작과 끝과 다시 일어난 이후로도 유일하게 오로지 그만이 저를 구했음인데. 겨울호수같이 시린 눈이나마 나만을 비추었고, 시체보다도 더 차가운 손이나마 나에게 뻗어주었다. 처음으로 '나'로써 선택할 기회를 주었고, 그 손을 잡는다는 나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으며, 그 선택을 후회치 않도록 해주었다.
스승. 불렀다. 이름없는 스승. 이름을 내려준 스승.
살껍질을 다 뜯겨서 붉은 덩어리같던 저에게 손을 내민 당신은 무슨 생각이었는가요. 당신은 왜 나를 거두었는가요. 말은 고여든 감정을 녹이고 결국 차오른 그것이 너무 커서 언어로써 모양을 다지지 못한채 흘러내렸다. 그 앞에 엎드려 옷자락을 부여쥐고 흐느낌으로 그 물음을 패대기치듯 토해야만 했다. 그러지 않고는 감히 내보일수조차 없었기 때문에.
나의 유일이다. 당신만이. 내 삶에서 나에게 오직 당신만이 나의 전부다. 그리여긴다. 그리 느낀다. 그리 바란다. 그러기를 원하며 그리 할 것이다. 당신이 나를 살아가게 함으로 단언했고, 나에게 이름을 내릴 적에 확신했고, 나를 거둘 적에 그러길 정했으며, 우리가 처음 보던 때에 이미 그것을 바랐으니.
그 날도 꼭 오늘만 같았지. 백월의 언제나 같은 것 같은 나날들 중에서도 꼭 오늘만 같았다. 느직한 여름이 다 못 치운 자락을 가을이 성급하게 밟아 버린 바보같이 좋은 날.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던 날. 나의 유일. 당신이 나의 유일을 많이도 만들어준 날. 그날과 꼭 같은 오늘도 나에게 유일이 붙은 단어들이 늘어간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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